[김기정의 와인 이야기] - CMB 심사 체험기 중국 와인에 대한 편견을 깨다

지난 6월 9일부터 12일까지 중국 닝샤에서 열린 제32회 브뤼셀 세계 와인 콩쿠르(Concours Mondial de Bruxelles,CMB)에서 심사위원들이 와인을 평가하고 있다. 중국 닝샤(寧夏)에 가서 와인 심사를 하고 왔습니다.

중국 닝샤 후이족자치구 인촨(銀川)시에선 지난 6월 9일부터 12일까지 제32회 콩쿠르 몽디알 드 브뤼셀(Concours Mondial de Bruxelles,CMB)이 열렸습니다. CMB는 디캔터 월드 와인 어워드(DAWA),인터내셔널 와인 챌린지(IWC)와 함께 세계 3대 와인품평회 중 하나입니다. 이번 CMB에선 56개국에서 참가한 375명의 심사위원들이 49개국에서 출품된 7165종류의 레드 와인과 화이트 와인을 평가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CMB가 왜 중국 닝샤에서 열렸을까요? 닝샤는 중국 정부가 ‘중국의 보르도를 만들겠다’는 계획하에 전략적으로 대규모 투자한 와인 생산지입니다. 모 엣 샹동,펜폴즈 등 세계 유명 와인 브랜드가 앞다퉈 닝샤에 진출하고 있고 대한민국 국가대표 소믈리에인 김경환 소믈리에도 중국 닝샤에서 왕요 스페셜,환주 리저브 등 프리미엄 레드 와인을 생산하여 출시하였습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지난 2024년 중국을 국빈 방문한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선물한 고급 와인 6종 선물세트가 닝샤 와인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 와인 시장에서 중국 와인의 비중은 높지 않습니다. 심지어 “중국에서도 와인이 생산되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한국 소비자들에게 중국 와인이 생소한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가격’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보입니다. 중국 프리미엄급 와인은 현지 소비자 가격이 30만 원이 넘고 중국 국내 수요가 넘치기 때문에 한국 소비자들이 중국 와인을 마실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이번 CMB에는 중국산 와인이 전체 출품 와인의 10%에 육박하는 672종이 나왔습니다. 올해 CMB에 출품된 와인에 대한 최종 평가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제가 심사한 와인 중에 최고 등급인 그랑 골드가 2개 나왔는데 그중 하나가 중국산 와인이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 소믈리에인 김경환 소믈리에가 중국 닝샤에서 만든 왕요

스페셜(왼쪽)과 환주 리저브 와인. 중국의 프리미엄급 와인은 현지 소비자

가격이 30만 원이 넘어 한국 소비자들에겐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다. 92점 이상이면 그랑 골드,CMB 와인 심사의 비밀

CMB 와인 심사는 어떻게 이뤄지냐고요? 평가는 와인의 레이블을 가리고 블라인드 테이스팅 방식으로 이뤄집니다. 와인은 보자기에 싸인 채 심사위원들에게 제공됩니다. 공개되는 정보는 포도 수확년도인 빈티지 정도입니다. 와인 산지와 포도 품종은 공개하지 않습니다. 6명의 심사위원이 한 조를 이뤄 하루에 33종류,3일간 약 100종의 와인을 시음하고 점수를 줍니다. 제가 속한 조에는 프랑스,미국,이탈리아,몰도바,중국에서 온 심사위원과 한국에서 제가 참여했습니다.

CMB 와인 평가 방식은 일반 와인 평가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와인의 색(visual),향(nose),맛(taste),전체적인 품질을 따집니다. 점수는 100점 만점제로 심사위원 평균 점수가 92점 이상이면 그랑 골드(Grand Gold) 메달,89점 이상이면 골드 메달,86점 이상이면 실버 메달을 받게 됩니다. 그 밑의 점수는 아무런 메달도 받지 못합니다. 메달을 받는 기준 점수는 해마다 조금씩 달라진다고 합니다.

심사위원 사이에 평가 점수 편차가 클 수 있기 때문에 처음에는 캘리브레이션 와인(calibration wine)을 시음하는 것으로 평가가 시작됩니다. 첫날 캘리브레이션 와인으로는 중국의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이 나왔습니다. 전체 심사위원단 평균 점수는 87점. 심사위원들은 이 정도 품질의 와인이 87점을 받는구나를 기억한 후 여기에 맞춰 앞으로 나올 와인들의 점수를 조정합니다. 저는 이 와인에 88점을 주었는데 저와 같은 테이블에 앉은 심사위원 6명의 최고점은 91점,최저점은 83점으로 비교적 편차가 컸습니다.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양조기술이 발전돼 대부분의 와인이 색에서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향과 맛은 CMB 출품 와인들에서도 차이가 컸습니다. CMB는 심사위원들에게 평가한 와인의 점수 채점표를 나눠줍니다. 자신이 어떤 와인 에 몇 점을 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제 채점표를 보니 시음한 98개 와인 중에 최고점 95점,최저점 77점이었습니다. 저의 경우 아주 좋은 와인은 대부분 향에서 결정됩니다.

향의 품질이 떨어지는 와인은 아무리 맛이 좋아도 그랑 골드 기준인 92점이 넘지 않게 점수를 주었습니다. 맛의 경우 저는 입안 깊숙이 파고 들어와 어금니 쪽에서 퍼지는 2번째,3번째 복합미가 있는 와인을 좋아합니다. 와인의 매력은 피니시가 긴 와인을 음미할 때 절정에 달합니다. 좋은 와인을 ‘원샷’하는 모습은 여전히 불편합니다.

제32회 브뤼셀 세계 와인 콩쿠르(CMB)에 참가한 심사위원이 와인의 향을 맡고 있다. 심사위원은 6명이 한 조를 이뤄 와인을 평가한다. 기자가 속한 조는 한국,프랑스,중국에서 온 심사위원들로 구성됐다.

브뤼셀 세계 와인 콩쿠르(CMB) 와인 심사에는 동일한 와인이 2번 출품된다. 심사위원이 같은 와인에 동일하거나 비슷한 점수를 줬는지 확인해볼 수 있다. 기자는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서 라보소(Raboso) 포도 품종으로 만든 2021년 빈티지 와인에 두 번 모두 92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동일하게 부여했다. 심사에는 개인 취향도 변수

평가는 심사위원 개인의 취향이 반영됩니다. 저와 같은 조에 속한 심사위원 중 이탈리아에서 온 심사위원은 “산도가 높은 와인을 선호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이탈리아 와인은 상대적으로 산도가 높습니다. 이탈리에선 와인을 음식과 같이 마시는 걸 중요시해 와인의 산도가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번 CMB 평가에서도 저는 와인의 산도가 살짝 튄다고 생각한 지역의 와인이 있었는데 나중에 평가지를 받고 보니 이탈리아 베네토 지역에서 라보소(Raboso) 포도 품종으로 만드는 와인이었습니다.

CMB는 심사위원을 평가하는 장치도 두고 있습니다. 동일한 와인을 무작위로 두 병씩 내놓고 심사위원이 같은 와인에 비슷한 점수를 주는지 확인합니다. 첫날 저희 테이블에선 일부 심사위원이 같은 와인에 대해 10점 넘게 다르게 평가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자신의 점수를 확인하더니 “와인과 관련한 직업을 봐꿔야겠다”라며 머쓱해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병의 상태에 따라 같은 와인도 평가점수가 크게 달라질 수는 있습니다. 저의 경우 채점표를 받아보니 첫날 심사에 중국 신장 와인(85점,84점),둘째 날 이탈리아 베네토 와인(92점,92점),마지막 날 이탈리아 풀리아 와인(91점,92점) 등 같은 와인에 비교적 동일한 점수를 주었습니다.

CMB와 같은 세계적인 와인품평회에 심사위원으로 초대 받아 참석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상당한 영예지만 와인 평가는 무척이나 진지한 작업입니다. 먼저 와인을 만들기 위해 1년을 고생했을 농부의 정성을 생각하며 가능한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몸 컨디션 관리에 신경을 많이 씁니다. 감기기운이 있어 코가 막히거나 몸이 피곤하면 와인의 품질을 정확하게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3일 동안 100종에 가까운 와인을 시음하다 보면 잇몸이 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와인은 탄산음료만큼 산도가 높습니다. 치아를 며칠 동안 콜라에 넣어두면 어떻게 될까요? 실제 경험이 많은 소믈리에들 중에는 치아로 고생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는 와인을 가장 맛있게 마시는 법을 묻는 말에 “건강을 잘 관리하라”고 답합니다. 몸이 건강할 때 와인도 맛있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