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버 오크 셀러스(Silver Oak Cellars)의 공동 소유주인 팀 던컨 최고재무책임자.
와인은 왼쪽부터 타임리스,실버 오크,투미 피노 누아,투미 소비뇽 블랑. ‘어떤 와인이 맛있는 와인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저는 “저를 취하게 하는 와인이 맛 좋은 와인”이라고 말합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은 와인이 좋은 와인이냐고요? 물론 아니죠.
저는 술 자체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와인은 다른 술에 비해 비교적 좋아하는 편입니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향과 질감,어금니 뒤에서 퍼지는 다양한 끝맛,와인을 마시며 오가는 대화와 분위기는 좋지만 알코올 자체를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실제 ‘혼술’도 해본 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맛있는 와인을 만날 때면 주량(소주 반병)을 넘어 마시게 됩니다. 취하는 것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 ‘실버 오크’는 마실 때마다 취하는 와인입니다. 실버 오크는 미국 캘리포니아 와인을 대표하는 와인입니다. 또 다른 대표 와인 케이머스가 살짝 달달하다면 실버 오크는 보르도 블렌딩의 밸런스가 잘 맞춰져 있는 와인입니다.
최근 실버 오크 셀러스(Silver Oak Cellars)의 공동 소유주인 팀 던컨 최고재무책임자(CRO Chief Revenue Officer)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지난 2023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인터뷰했던 데이비드 던컨의 형입니다. 데이비드 던컨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실버 오크의 창업주이자 팀 던컨,데이비드 던컨의 아버지 레이먼드 던컨을 기리는 와인 ‘타임리스’(Timeless Napa Valley) 스토리를 소개했습니다. 사실 ‘실버 오크’는 별다른 소개가 필요 없을 정도로 너무나도 유명한 와인이니까요.

2021 투미 러시안
리버 밸리 피노 누아 실버 오크가 ‘피노’로 만든 와인,창업주 어머니 이름 ‘투미’로 지어
‘실버 오크’는 두 가지 원칙을 고집합니다. 하나는 포도 품종으로 카베르네 소비뇽을 주로 써야 합니다. 다음은 숙성 때 프랑스산 오크통 대신 미국산 오크통을 사용합니다. 이 두 가지 원칙에서 벗어난 와인,예를 들어 피노 누아라든가 소비뇽 블랑과 같은 포도 품종을 쓴 와인은 ‘실버 오크’ 대신 ‘투미(Twomey)’라는 브랜드를 사용합니다. 투미는 팀 던컨의 할머니이자 창업자 레이먼드 던컨의 어머니 이름입니다.
‘실버 오크’라는 브랜드 인지도가 워낙 높고 평가가 좋아 카베르네 소비뇽 외에 다른 품종에도 실버 오크라는 브랜드를 달았으면 가격을 더 높게 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실버 오크는 카베르네 소비뇽만 사용한다는 브랜드 전략을 고수했고,실버 오크 브랜드를 쓰지 않는 다른 품종의 와인들은 품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습니다(물론 최상위 라인인 타임리스는 예외입니다).
실제 이날 시음한 투미 러시안 리버 피노 누아는 정말 맛있었습니다. 2021년 빈티지인데 영빈티지의 상큼함과 함께 피노 누아 특유의 여리여리한 끝맛이 일품입니다. 부드럽지만 밋밋하지 않고 스파이시한 뒷맛도 매력적이었습니다. 캐릭터가 살아 있다고나 할까요. 식사 시간이 흐르면서 피노 누아의 과실 향이 더 도드라지게 올라왔습니다. 투미 러시안 리버 밸리 피노 누아는 숙성 때 프랑스 오크를 사용했지만 과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참고로 실버 오크는 아메리칸 오크를 고집합니다. 참석자 중 한 명이 “실버 오크는 아메리칸 오크를 쓰는데 투미 피노 누아는 왜 프렌치 오크를 사용했냐”라고 질문하자 팀 던컨은 “와인메이커가 프렌치 오크가 맞다고 해서”라고 답했습니다.

(왼쪽) 2018 실버 오크 알렉산더 밸리 카베르네 소비뇽 (오른쪽) 2018 타임리스 내파밸리 이번 모임에 가져갈 와인? 실버 오크는 고민이 필요 없다
저는 와인과 음식의 페어링에 대해 ‘맹신’하는 편은 아닙니다. 이 와인이 고기와 잘 어울린다,또는 저 와인이 회와 잘 어울린다는 표현은 너무나도 일반화한 표현입니다. 고기 맛이나 회 맛이 음식점마다 다르니까요. 하지만 한남동 스테이크 맛집 스미스앤월렌스키의 스테이크와 실버 오크 와인들은 너무나도 잘 어울렸습니다. 더구나 이날은 테이스팅을 할 때 비가 막 내렸습니다. 스미스앤월렌스키의 루프톱에서 비가 떨어지는 소리,바람 소리가 와인과 음식의 맛을 더했습니다.
와인은 개인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립니다. 3만 원짜리 와인을 100만 원짜리 와인처럼 마시는 사람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는 와인 애호가로서 무척 안타깝지만 역시 옳다,그르다의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보통 와인 애호가들은 와인 셀러와 옷장이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옷장에 옷이 많지만 모임에 입고 나갈 옷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와인 셀러에 와인은 많지만 정작 모임에 가지고 나갈 적절한 와인을 찾는 게 의외로 어렵습니다. 그럴 때 실버 오크는 고민이 필요 없는 와인입니다. 와인을 좀 마셔본 사람과 함께하는 와인모임이라면 실버 오크를 꺼내는 당신의 손이 부끄럽지 않을 것입니다. 실버 오크,투미,타임리스... 실버 오크 브랜드를 단 와인들은 항상 옳습니다.